[문화] 조선의 야식 문화 — 한양 밤거리를 달군 야경꾼과 주막
조선시대 한양에는 야간통행금지가 있었다. 인정(人定) 종이 28번 울리면 통행이 금지되고, 파루(罷漏) 종이 33번 울려야 다시 다닐 수 있었다. 인정은 밤 10시, 파루는 새벽 4시경이었다. 약 6시간 동안 한양 거리는 공식적으로 텅 비어야 했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에 밤이라고 아무것도 없을 수는 없었다. 조선의 밤거리에는 야경꾼의 딱딱이 소리와 함께 은밀한 야식 문화가 꽃피었다.
야경꾼과 딱딱이
통금 시간 한양 거리를 지킨 것은 야경꾼이었다. 이들은 딱딱이(拍板)라는 나무 박자 악기를 두드리며 순찰했다. 딱딱이 소리는 "나 야경꾼이니 숨어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통금을 어기고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듣고 골목 안으로 몸을 숨겼다.
야경꾼도 사람인지라 뇌물에 약했다. 통금 이후에도 급한 일로 거리에 나서야 하는 사람들은 야경꾼에게 몇 푼을 쥐여주고 눈감아 달라고 부탁했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이런 관행이 공공연했다고 나온다.
주막, 조선의 심야식당
통금이 있었지만 주막은 예외였다. 여행자와 상인을 위한 숙박시설 겸 식당인 주막은 밤에도 운영할 수 있었다. 한양 도성 안팎의 주막은 통금 이후에도 은밀하게 문을 열어 손님을 받았다.
주막에서 파는 음식은 단순했다. 막걸리와 함께 나오는 안주가 전부였는데, 그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이 설렁탕이었다. 소뼈를 오랫동안 푹 끓인 설렁탕은 언제든 빠르게 낼 수 있어 주막 음식으로 제격이었다. 조선시대 설렁탕의 원형이 바로 이 주막 야식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금난전권과 야시장
조선 후기에는 한양 도성 밖에서 야시장이 열리기도 했다. 도성 안에는 시전(市廛) 상인들이 독점권(금난전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도성 밖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했다. 지금의 동대문 인근 이간수문 밖에서는 밤에도 작은 장이 서서 먹거리를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정조 때인 1791년 신해통공(辛亥通共)으로 금난전권이 폐지되면서 한양의 상업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이후 한양 곳곳에 난전이 생겨났고, 야간에도 먹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늘어났다. 조선판 포장마차의 등장이었다.
지금 서울의 심야 음식 문화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통금의 딱딱이 소리를 피해 주막 한 켠에서 뜨끈한 설렁탕 한 그릇을 들이키던 조선 사람들의 DNA가 500년을 이어온 것이다.
| 항목 | 내용 |
|---|---|
| 관련 장소 | 청계천 일대, 동대문 인근 |
| 체험 | 서울 야시장 (청계광장,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 관련 전시 | 서울역사박물관 조선시대 생활상 전시 |
| 교통 |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또는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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