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한양 오간수문, 청계천 밑으로 흐르던 조선의 비밀 수문
서울 중구 신당동, 동대문 근처 청계천 변에는 오간수교라는 다리가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이 다리 자리에 조선시대에는 오간수문(五間水門)이 있었다. 5개의 아치형 수문으로 이루어진 이 구조물은 청계천의 물이 한양 도성 밖으로 빠져나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단순한 수문처럼 보이지만, 이 구조물 하나에 조선의 치수 기술과 도성 방어 전략이 모두 담겨 있었다.
도성의 물을 내보내는 유일한 문
한양 도성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었다. 비가 오면 북악산, 인왕산, 남산에서 내려온 빗물이 모두 청계천으로 모였고, 이 물은 반드시 도성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오간수문은 바로 그 역할을 했다.
5개의 아치 수문은 평상시에는 활짝 열려 청계천 물이 자유롭게 흘러나갔다. 그러나 장마철 폭우가 내리면 수문의 크기가 유량을 조절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의 건축가들은 수문의 아치 크기와 개수를 치밀하게 계산해 홍수 피해를 최소화했다.
수문이 곧 성문이었다
오간수문은 단순한 수문이 아니었다. 도성 성벽에 뚫린 구멍이기도 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시설이었다. 수문 위에는 병사들이 지키는 초소가 있었고, 수문 안쪽에는 쇠창살이 설치되어 있었다.
실제로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떠난 뒤 한양이 텅 비자, 일본군 일부가 오간수문의 쇠창살을 뜯어내고 도성 안으로 침입했다는 기록이 있다. 물이 드나드는 수문이 적군의 침입로가 된 것이다. 이후 조선 조정은 수문 보안을 대폭 강화했다.
사라진 수문, 남은 이름
오간수문은 1908년 일제가 청계천 정비 사업을 벌이면서 철거되었다. 600년 가까이 한양의 물길을 지키던 구조물이 단 한 번의 공사로 사라진 것이다. 지금은 오간수문터를 알리는 표지석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05년 청계천 복원 사업 때 오간수문을 재현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결국 원형 복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오간수교라는 이름의 다리가 그 자리에 놓여 옛 이름만 남아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600년 전 조선의 치수 기술을 떠올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흔적이다.
조선의 토목 기술이 담긴 유산
오간수문은 당시로서는 첨단 토목 기술의 결정체였다. 5개의 아치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하고, 각 아치가 수압을 균등하게 분산시키도록 설계했다. 별도의 철근 없이 돌만으로 쌓은 아치 구조가 수백 년간 청계천의 수압을 견뎌낸 것이다.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는 오간수문의 모형과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그 규모와 구조를 짐작할 수 있다.
| 항목 | 내용 |
|---|---|
| 위치 | 서울 중구 청계천로 (오간수교 인근) |
| 현재 | 표지석만 남아있음 |
| 교통 | 지하철 2·4·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도보 5분) |
| 관련 전시 | 서울역사박물관 (종로구 새문안로 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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