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

[역사] 청계천, 조선시대엔 하수구였다?

|기록: 서울역사 에디터
지금은 서울 시민의 힐링 명소가 된 청계천. 그런데 조선시대엔 한양 최대의 하수구였다는 사실, 알고 있었나요?

지금 청계천을 걷다 보면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산책하는 시민들, 알록달록한 조명, 계절마다 열리는 축제가 반긴다.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이 5.8km의 물길은 오늘날 서울의 대표적인 힐링 명소다. 그런데 불과 600년 전, 이 자리는 한양 최대의 하수구였다.

한양의 설계 실수, 청계천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정한 1394년, 도시 설계자들은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를 마주했다. 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으로 둘러싸인 한양은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어 빗물이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비가 오면 물이 도성 한가운데로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지금의 청계천 자리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단순히 물이 고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한양 인구가 늘어나면서 생활하수와 오물이 빗물과 함께 청계천으로 흘러들었다. 조선 초기 기록에는 청계천을 "개천(開川)"이라 불렀는데, 이는 그냥 '열린 하천'이라는 뜻이었지만 실상은 도시 전체의 배수로 역할을 했다.

태종의 대공사, 개천 준설

청계천 문제가 심각해지자 3대 임금 태종은 1411년 대대적인 개천 공사를 명령했다. 무려 5만 2,800명의 인력을 동원해 하천을 넓히고 깊게 파는 준설 공사를 벌였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공사 기간은 약 두 달, 지금으로 치면 국가 토목 사업의 규모였다.

이후에도 준설 공사는 주기적으로 이어졌다. 영조 때인 1760년에는 21만 명을 동원한 역대 최대 규모의 준설이 이루어졌다. 57일 만에 청계천 전 구간을 파내고 양쪽에 돌로 된 제방을 쌓았다. 이때 나온 흙의 양이 어찌나 많았던지, 지금의 낙산 일대에 쌓아 작은 언덕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빨래터이자 식수원, 그리고 하수구

조선시대 청계천은 동시에 여러 역할을 했다. 상류 쪽은 그나마 깨끗해 빨래터로 사용되었고, 일부 가난한 백성들은 청계천 물을 식수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하류로 갈수록 각종 오물과 생활하수가 뒤섞여 악취가 심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제가는 저서 『북학의』에서 "청계천의 더러움이 날로 심해져 여름이면 역병이 돈다"고 기록했다. 실제로 조선시대 한양에서 콜레라나 이질 같은 수인성 전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청계천 주변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복개와 복원, 600년의 변신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청계천은 서서히 덮이기 시작했다. 악취와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콘크리트로 하천을 덮는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고, 1960~70년대에는 그 위로 고가도로가 놓였다. 청계천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2003년, 서울시는 40여 년간 콘크리트 아래 잠들어 있던 청계천을 다시 꺼내기로 결정했다. 2년간의 공사 끝에 2005년 10월, 청계천은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조선시대 하수구에서 일제강점기 복개 하천으로, 다시 21세기 생태 하천으로 — 청계천은 서울 600년 역사를 그대로 품고 흐른다.

항목 내용
위치 서울 종로구 ~ 성동구 (청계광장 ~ 고산자교)
길이 5.8km
이용 24시간 개방, 무료
교통 지하철 1호선 시청역 또는 2호선 을지로입구역
추천 구간 청계광장 ~ 광통교 (역사 유적 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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