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왕산, 무당과 호랑이가 살던 조선의 금단의 산
| 항목 | 내용 |
|---|---|
| 위치 | 서울 종로구 |
| 해발 | 338m |
| 풍수 역할 | 한양 우백호(右白虎) |
| 주요 명소 | 국사당, 선바위 |
| 관련 예술작품 | 겸재 정선 〈인왕제색도〉 |
| 일반 개방 | 2022년 |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내려 15분만 걸어가면 인왕산 입구가 나옵니다.
해발 338m, 크지도 않고 험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산이 조선시대에는 호랑이가 출몰하고, 무당들의 굿소리가 끊이지 않던 금단의 땅이었습니다.
경복궁의 오른쪽 어깨에 해당하는 산 — 풍수지리상 조선 왕조의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하는 인왕산은 단순한 뒷산이 아니었습니다.
호랑이가 도성 안을 돌아다녔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인왕산 호랑이가 궁궐 근처까지 내려왔다는 내용이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경복궁 인근에서 호랑이가 사람을 해쳤다는 기록이 수십 건에 달합니다.
조정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전담 포수 부대를 운영했습니다.
이들은 인왕산과 북한산 일대를 순찰하며 호랑이를 사냥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조선 중기까지도 인왕산에서는 정기적으로 호랑이 사냥이 벌어졌습니다.
그렇다고 조선이 호랑이를 단순한 위협으로만 보지는 않았습니다.
호랑이는 동시에 산신(山神)의 상징이었고, 잡아서 왕에게 진상하는 귀한 동물이기도 했습니다.
인왕산 호랑이는 조선인에게 두려움이자 신성함이었습니다.
무당들의 성지 — 국사당과 선바위
인왕산 중턱에는 **국사당(國師堂)**이 있습니다.
원래는 남산 꼭대기에 있던 무속 신당이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25년 일본이 남산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인왕산으로 강제 이전됐습니다.
국사당에는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 여러 무속 신장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지금도 서울 무속인들의 중요 성지로 기능하고 있으며, 큰 굿판이 열릴 때면 꽹과리 소리가 산을 타고 내려옵니다.
국사당 바로 아래에는 **선바위(禪岩)**가 있습니다.
스님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모습처럼 생겼다고 해서 선바위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조선을 건국할 때 태조 이성계는 이 바위를 한양의 수호신으로 삼으려 했지만, 스님 모양이라는 이유로 배불숭유(排佛崇儒) 정책에 반한다며 신하들이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겸재 정선이 사랑한 산
인왕산은 조선 최고의 화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이 평생 가장 사랑한 산입니다.
정선은 인왕산 자락인 지금의 청운동 일대에서 평생을 살았고, 인왕산을 소재로 수십 점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입니다.
비가 그친 직후 인왕산의 바위와 안개를 먹의 농담으로 표현한 이 그림은, 조선 산수화의 정점으로 꼽힙니다.
76세에 그린 이 그림에서 정선은 평생 바라본 인왕산의 모습을 한 폭에 담아냈습니다.
현재 국보로 지정돼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일제가 인왕산에 한 일
일제강점기에 인왕산 일대는 또 한 번 수난을 겪습니다.
조선인들이 인왕산에서 독립운동 모의를 한다는 이유로 일대 접근이 제한됐고, 산 아래 옥인동·청운동 일대에는 일본인 관리들의 거주지가 들어섰습니다.
앞서 언급한 국사당의 강제 이전도 이 시기의 일입니다.
조선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던 무속 공간을 남산에서 몰아낸 것은, 남산을 일본의 성지로 만들기 위한 계획적인 작업이었습니다.
지금의 인왕산
인왕산은 1968년 1.21 사태(북한 무장대원의 청와대 습격 미수 사건) 이후 오랫동안 민간인 출입이 금지됐습니다.
청와대와 가까운 군사 요충지이기 때문이었죠.
일반인에게 완전 개방된 것은 2022년의 일입니다.
조선시대엔 호랑이 때문에, 현대에는 군사 때문에 — 인왕산은 시대마다 다른 이유로 서울 시민에게 금단의 산이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오를 수 있습니다. 정상에 서면 경복궁과 서울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겸재 정선이 평생 바라본 그 풍경이, 3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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